익명의 계절들 — 제3화 · 3층 서쪽

익명의 계절들 · 겨울
제3화 · 3층 서쪽 · 전 11회 중 3회

화요일 새벽 세 시, 병원 정문 앞에 섰다.

낮에는 그토록 크던 건물이 밤이 되자 이상하게 작아 보였다. 불 꺼진 창문들이 검은 눈처럼 나를 내려다봤다. 응급실 입구만 홀로 밝았는데, 그 빛은 멀리서 보면 따뜻해 보였어도 가까이 다가서면 형광등 특유의 차갑고 흰 기운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빛이 있었다. 멀리서만 따뜻한 빛. 어머니의 병실 불이 그랬다. 복도 끝에서 바라보면 그 방만 노랗게 데워진 듯했는데, 정작 문 앞에 서면 그 안이 세상에서 가장 추운 방이었다.

회색 코트는 응급실 입구 옆,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그늘에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오래 망설였다. 다가가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한마디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나를 알아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오래 서 있던 사람이 새로 온 사람의 기척을 알아차리듯이.

“오시지 않을 줄 알았어요.”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메말라 있었다. 오랫동안 혼잣말만 해온 사람의 목소리. 그제야 얼굴을 봤다. 마흔 언저리. 잠을 못 이룬 얼굴을 넘어, 잠이라는 것 자체를 오래전에 포기해버린 얼굴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바닷바람이 새겨놓은 잔주름. 그 얼굴을 보는데, 바닷가에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뒷모습이 그 위에 겹쳤다. 그 사람이 살아 여기 서 있다는 것이 반가움보다 오히려 서늘했다. 물에 삼켜졌던 사람이 뭍으로 되걸어 나온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저를 아세요?” 물었다.

여자가 잠깐 나를 가만히 봤다. 그 잠깐이 이상하게 길었다. 무엇인가 말하려다 삼키는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말했다. “그런데 당신, 이 병원에서 일하죠. 서류 만지는 사람. …여섯 개 찾았어요?”

놀랐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려다 관뒀다. 이 사람은 병원을 나보다 오래, 나보다 깊이 알았다. 물어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찾았어요.” 여섯 명. 5년 전 겨울. 3층 서쪽.

여자가 처음으로 나를 정면으로 봤다.

“일곱이에요.” 말했다. “당신이 아직 못 찾은 게 하나 더 있어요. 그건 서류에 아예 없거든요. 없는 걸 찾으려면, 있는 것들 사이의 간격을 봐야 해요.”

몸을 돌렸다. 응급실 옆 비상계단 쪽으로.

“보여드릴게요.” 말했다. “대신, 냄새는 각오하세요.”

비상구 문은 안쪽 걸쇠가 헐겁게 흔들렸다. 끝까지 잠기지 않는 문. 그런 문은 늘 은밀한 초대장 같았다. 여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걸쇠를 들어 올렸고, 그 익숙함이 몇 번의 밤을 쌓아야 나오는 것인지 나는 속으로 가늠해봤다. 셀 수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여자가 제 이름을 말했다.

“이미애예요.” 앞서 걸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기서 간호사로 있었어요. 화재 나던 밤, 저는 3층에 없었어요. 5층 내과에 있었죠. 불이 났다는 걸 알았을 때, 제 병동 환자들을 먼저 챙겼어요. 그게 맞는 거였어요. 규정도 그렇고. 그런데 며칠 뒤에 알았어요. 3층에서 죽은 아이 중에, 제가 아는 애가 있었다는 걸. 몇 달 전에 5층에 잠깐 입원했던 아이였어요. 저한테 바다 얘기를 자주 했어요. 퇴원하면 바다 보러 갈 거라고.”

계단참에서 잠깐 멈췄다.

“저는 규정을 지켰어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지켰고요. 아무도 저를 탓하지 않았어요. 그게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탓할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저를 탓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 등을 보며 계단을 올랐다. 규정을 지킨 사람의 죄책감. 어긴 사람의 죄책감보다 더 지독한 데가 있었다. 어긴 사람에게는 뉘우칠 잘못이라도 남지만, 지킨 사람은 뉘우칠 잘못조차 없이 평생 무엇인가를 갚아야 했다.

3층에 이르자 냄새가 먼저 왔다.

탄 냄새 그 자체는 아니었다. 탄 냄새를 기어이 떠올리게 만드는, 그보다 미묘한 무엇. 오래된 소독약과 그을음과 습기가 뒤엉켜 목구멍 안쪽에 무겁게 내려앉는 냄새. 기침을 참았다. 미애는 참지 않았다. 익숙한 사람은 참을 까닭을 못 느낀다. 복도의 공기는 아래층보다 몇 도쯤 낮았다. 여름에도 이럴 거라고, 미애가 지나가듯 말했다. 이 복도만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고. 5년째 겨울 새벽 그 시각에 멈춰 서 있다고.

복도 끝 병실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와 바닥에 노란 선을 그었다. 미애가 문을 밀었다.

방 안의 네 벽이, 나를 보고 있었다.

벽은 종이로 덮여 있었다. 빈틈없이.

흑백으로 바랜 사진들. 누렇게 삭은 신문 조각들. 반쯤 불에 그슬려 가장자리가 검게 오그라든 서류들. 손으로 베껴 쓴 명단. 벽 한가운데, 다른 것들보다 크게 붙여놓은 종이에 여섯 개의 이름이 있었고, 그 여섯 번째 밑으로 일곱 번째 줄이 비어 있었다.

“5년 동안 모았어요.” 미애가 벽을 향해 서서 말했다. “병원 안에서는 다 지워졌지만, 완전히 지우는 건 불가능해요. 사람이 살다 가면 흔적이 병원 밖에도 남거든요. 약국 처방, 구급차 운행일지, 장례식장 접수대장, 화장장 예약, 지역 신문 부고.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을 하나씩 주웠어요. 퍼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한 퍼즐이었지만.”

벽으로 다가갔다. 여섯 개의 이름을 하나씩 읽었다. 낯선 이름들. 세 번째 이름에서 걸음이 멎었다.

김은희. 열여섯.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병실 호수와 병명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미애의 손글씨. 바다를 좋아했다. 창가 쪽 침대를 늘 원했다. 그리고 그 곁에, 다른 종이 몇 장이 핀으로 꽂혀 있었다. 연필로 쓴 편지들. 아이의 글씨.

읽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눈이 먼저 한 줄을 붙잡았다.

그 아저씨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아. 물어보면 그냥 웃어.

숨이 멎었다.

그다음 줄. 아저씨가 순회 돌 때 내 병실 앞에서 한 번 더 멈춰준댔어. 그러면 시계 소리 대신 아저씨 발소리를 세면 된대. 하나, 둘, 셋.

손이 떨렸다. 왜 떨리는지 머리는 몰랐다. 그런데 팔이 알았다. 무거운 침대 바퀴가 병실 바닥 이음새에 걸리며 덜컹이던 그 감각을, 팔이 기억했다. 침대를 창가로 밀어주던 그 무게를. 규칙 위반인 줄 알면서도, 아이가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걸 끝내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밤에 오는 아저씨.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던 아저씨. 그 아저씨가 누구인지, 몸이 먼저 알았다. 머리는 아직 몰랐다. 알면서도 밀어냈다. 그 아저씨가 나라면, 그는 이 아이를 끝내 못 데리고 나온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괜찮아요?” 미애가 물었다.

“…네.” 겨우 말했다. 편지에서 눈을 떼며. “이 아이는, 왜 이름이 없어요.”

미애가 나를 봤다. 그 눈에 처음으로 감정 같은 것이 스쳤다. 분노였는지 피로였는지, 둘이 너무 오래 섞여 더는 나뉘지 않는 무엇이었는지.

“사무국장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말했다. “오상근. 지금은 부원장이에요. 화재가 나고 병원이 뒤집혔을 때, 그 사람이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요? 소방 점검이 실제로 됐는지 확인한 게 아니에요. 인력을 왜 그렇게 줄였는지 반성한 것도 아니고요. 책임질 게 몇 개인지 세는 거였어요. 사망자가 많을수록, 보호자가 있을수록, 병원이 물어줄 게 많아지니까. 그래서 애매한 건 지웠어요. 은희처럼 보호자 연락이 늦어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경우는, 확인되지 않은 채로 그냥 없던 일이 됐어요.”

“그건 범죄잖아요.”

“범죄죠.” 미애가 담담하게 말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유족 확인 의무 방기. 근데 증명을 해야 범죄예요. 5년이 지났고, 지운 사람은 이제 부원장이고, 지워진 사람은 말을 못 해요. 남은 건 이 방뿐이에요.”

벽 한가운데, 여섯 번째 이름 밑의 빈 줄을 가리켰다. “일곱 번째는요. 아까 일곱이라고 하셨잖아요.”

미애가 그 빈 줄을 한참 봤다.

“그 사람은 환자가 아니었어요.” 말했다. “그날 밤 거기서 일하던 사람이에요. 비정규직이라 근무자 명단에도 제대로 올라 있지 않던. 화재 때 사람들을 끌어냈다는 얘기가 있어요. 몇 명은 그 사람 덕에 살았다고.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그날 이후로 어디에도 없어요. 죽었다는 기록도, 살았다는 기록도. 5년째 찾고 있어요. 산 채로 지워진 사람은, 죽어서 지워진 사람보다 찾기가 더 어려워요. 아무도 찾지 않으니까.”

그 빈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명치가 뜨거워졌다. 아주 오래. 그 빈 줄이 나를 향해 벌어져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바로 그때, 방 안의 온도가 한 번 더 떨어졌다.

벽에 붙은 사진 하나가 핀에서 빠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람 한 점 없었는데. 미애가 그것을 주웠지만, 다시 붙이지 않고 손에 든 채 가만히 있었다. 복도 쪽에서 소리가 났다. 낮게,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외는 소리. 이름과 날짜를 차례로 부르는 것 같은 소리. 정은이 말하던 그 소리였다. 귀를 기울이면 사라지고, 귀를 떼면 실낱처럼 돌아오는.

“들려요?” 물었다.

미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는 얼굴로.

“매일 밤 들려요.” 말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제는… 저 소리가 멈추는 게 더 무서워요. 저 소리가 멈추면, 정말로 다 잊힌 거니까. 누군가 아직 이름을 외고 있다는 건,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진짜 발소리였다. 산 사람의.

미애가 순식간에 불을 껐다. 방이 어둠에 잠겼고, 문틈으로 새어드는 손전등 불빛이 벽의 사진들을 훑고 지나갔다.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누군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놓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또 왔네.” 문밖에서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이미애 씨. 이러다 진짜 큰일 나요.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거지만, 괜한 의심 사요.”

미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발소리가 멀어졌다. 손전등 불빛이 문틈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우리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김 주임이에요.” 미애가 어둠 속에서 속삭였다.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못 본 척해주는 사람.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필요해요. 다만 못 본 척하는 일도 5년쯤 하면, 그것 때문에 늙어요.”

미애가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나를 오래 봤다. 아까 정문 앞에서 삼켰던 말을, 이번엔 삼키지 않았다.

“당신,” 말했다. “정말 우리, 처음이에요?”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이라고 말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순간 처음으로 또렷한 문장이 되어 머릿속을 지나갔다. 주머니 속 종이를 꺼내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았다. 박준호. 그 이름을 이 방에서 꺼내면,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어질 것 같았다.

“…처음이에요.” 겨우 그렇게 말했다.

미애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눈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벽 어딘가에서, 은희의 편지가 바람도 없이 한 번, 가볍게 흔들렸다.

다음 화

제4화 · 지워진 사람들
8월 12일 (수) 공개 예정
유상수 — Editlab 대표 · 작가
장편소설 『선택』 『물먹은 벽지』 『달의 수로를 걷는 밤』. 프로필·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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