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계절들 — 제4화 · 지워진 사람들

익명의 계절들 · 겨울
제4화 · 지워진 사람들 · 전 11회 중 4회

그 방에 다시 가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가지 않으려 했다. 가면 편지를 또 읽어야 했고, 편지를 읽으면 팔이 또 그 침대의 무게를 기억할 테니까. 그런데 사흘째 밤, 발이 또 병원 쪽으로 걸었다. 몸은 제가 잃어버린 것이 어디 있는지 머리보다 먼저 안다. 이제는 그 말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미워한다고 발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미애는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여섯 명이에요.” 말했다. “다 채워야 해요. 이름만 있는 건, 반쯤 지워진 거랑 같아요. 이름 옆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있어야, 완전히 돌아와요.”

그날부터 밤마다 그 방에서, 죽은 사람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웠다.

첫 번째는 노인이었다. 손칠복, 일흔셋.

미애가 모은 조각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연고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자식이 있긴 했으나 오래전에 연을 끊었다고 했다. 병원에 올 때도 혼자였고, 갈 때도 혼자였다. 그런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일은 은희보다 어려웠다. 세상과 이어진 끈이 애초부터 가늘었던 사람.

그런데 조각 하나가 있었다. 병원 앞 국밥집 주인의 증언. 그 노인이 화재 나기 며칠 전, 그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주인이 기억하는 것은, 그 노인이 밥값을 낼 때마다 꼭 백 원을 더 놓고 갔다는 사실이었다. 거스름돈 받기가 귀찮아서냐고 물으면 그게 아니라고 했단다. 언젠가 이 동전이 모여 다른 이의 국밥 한 그릇 값이 되면, 저처럼 혼자 오는 사람 하나가 공짜로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미애가 그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노인의 이름 옆에 붙였다. 손칠복, 일흔셋. 국밥집에 백 원씩 남기던 사람.

세상은 그를 무연고라 불렀다. 이을 연이 없는 사람. 그런데 끈이 없어 보이던 그 노인은, 실은 그 가느다란 끈을 자꾸만 세상 쪽으로 던지고 있었다. 다만 끈이 너무 가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 노인의 이름을 적는데, 까닭도 없이 눈이 뜨거워졌다. 이제는 그 까닭을 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끈을 던지는 사람을 보면, 그게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는 젊은 여자였다. 이수진, 스물아홉. 미혼모였다.

아이는 화재가 나기 전에 다른 병동으로 옮겨져 살았다. 엄마만 3층 서쪽에 남았다가 죽었다. 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미애도 몰랐다. 보육원으로 갔으리라고만.

미애가 찾아낸 것은, 그 여자가 병실에서 쓰던 육아일기 한 권이었다. 장례식장 유품에 섞여 있던 것을 미애가 오래 수소문해 손에 넣었다. 거기엔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아이에게 쓴 편지들이 있었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엄마가 나으면 우리 바다 보러 가자. 은희도 바다, 이 여자도 바다. 3층 서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그리워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병동이라 더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이 사람을 더 오래 붙드는 법이니까.

마지막 장에는 아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이름 옆에, 미처 정하지 못한 듯 다른 이름 두 개가 지워진 채 남아 있었다.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 아이 이름을 고르고 있었다. 제 이름은 곧 지워질 것도 모른 채, 아이 이름만은 끝까지 남기려고.

그 일기를 덮는데, 서늘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보육원에서 한 아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엄마 이름이 세상에서 지워진 것도 모른 채. 그 아이에게 언젠가 엄마 이름을 돌려줄 수 있다면. 이수진, 스물아홉. 죽는 순간까지 네 이름을 고르던 사람. 그 한 줄이,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의 평생을 바꿀 수도 있었다. 이름 하나가 그토록 무거웠다.

세 번째는 이름이 두 번 지워진 사람이었다.

응웬반토안. 스물여섯.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였다. 조선소 하청에서 일하다 다쳐 입원했다. 미애가 처음 그의 기록을 봤을 때, 이름은 ‘완반타’로 적혀 있었다. 누군가 서류에 옮겨 적으며 소리 나는 대로, 그것도 틀리게 적은 것이다. 응웬반토안이라는 이름은 죽기도 전에 이미 한 번 지워져 있었다. 발음이 어렵다는 까닭으로. 한국말이 서툴다는 까닭으로. 그리고 화재 뒤에, 완반타라는 그 틀린 이름마저 지워졌다. 두 번 지워진 사람. 원래 이름으로도, 틀린 이름으로도 세상에 남지 못한 사람.

미애가 그의 진짜 이름을 찾아낸 것은, 매달 같은 날 같은 액수가 빠져나간 은행 기록에서였다. 월급의 절반이 다달이 베트남으로 부쳐지고 있었다. 받는 사람 이름은 응웬티란. 어머니였을 것이다. 아니면 아내였거나. 마지막 송금은 화재 나기 나흘 전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그 계좌는 영영 멈췄다. 베트남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5년 동안, 다달이 오던 돈이 왜 오지 않는지 모른 채 기다렸을 것이다. 아들이, 혹은 남편이 왜 소식이 없는지 모른 채.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적어주지 않았으니, 죽었다는 소식이 국경을 넘어갈 리 없었다.

그의 지갑에서 나온 유일한 사진은 갓난아기였다. 뒷면에 글자 한 줄. 제가 떠난 뒤에 태어난 아이였는지도 몰랐다. 얼굴도 못 본 아이의 사진을, 얼굴도 못 볼 걸 알면서 지갑에 넣고 다닌 사람. 응웬반토안, 스물여섯. 다달이 절반을 부치고, 못 본 아이의 사진을 품고 다닌 사람.

그 이름을 적는데, 손이 오래 멎었다. 이름을 잃는 데에는 여러 길이 있었다. 죽어서 지워지기도 했고, 산 채로 지워지기도 했고, 응웬반토안처럼 살아 있을 때부터 발음이 틀린 채로 불리다가 죽어서 그 틀린 이름마저 잃기도 했다. 세상은 어떤 이름은 어렵다는 까닭 하나로 지워도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려운 이름일수록, 지키려면 더 정확히 불러야 했다. 응웬반토안. 세 번, 소리 내어 발음해봤다. 틀리지 않으려고.

네 번째는 이미 오래전에 잊힌 사람이었다. 죽기도 전에.

김말순, 여든하나. 치매를 앓았다. 처음엔 자식들이 번갈아 왔다고 했다. 그러다 점점 뜸해졌다. 어머니가 저를 못 알아보는 것을 견디는 자식은 많지 않았다.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을 그래도 계속 찾아오는 데에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나중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병원비만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다. 돈은 왔어도 사람은 오지 않았다. 김말순은 죽기 몇 해 전에 이미, 가족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사람이었다.

미애가 찾은 조각은 간호 기록 한 줄이었다. 환자, 밤마다 ‘복순아’를 부름. 복순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었다. 미애가 오래 수소문한 끝에 알아낸 것은, 복순이 김말순이 열일곱에 잃은 여동생 이름이라는 사실이었다. 예순 해 전에 죽은 동생. 치매가 예순 해를 거슬러 올라가, 세상 모두가 잊은 이름 하나를 김말순의 입에 되돌려놓았다. 정신이 온전할 땐 한 번도 부르지 않던 이름을, 정신이 무너지고 나서야 매일 밤 불렀다. 치매는 지우기만 하는 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먼저 지워버린 이름 하나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입에 얹어주는 병이기도 했으니까.

김말순, 여든하나. 죽기 전에 이미 잊혔으나, 죽는 순간까지 예순 해 전 동생의 이름을 부른 사람.

다섯 번째 사람의 이야기를 적을 때는, 손이 아니라 귀가 아팠다.

박동수, 마흔넷. 청각장애가 있었다. 그날 밤, 화재경보가 울렸다. 그 경보가 그 병동의 유일한 경고였다. 소리로만 울리는 경보. 박동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3층 서쪽에는 불빛으로 알리는 시각경보기가 없었다. 예산 문제였다고, 나중에 누군가 말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불빛 하나가, 예산에서 밀려 있었다.

경보가 울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뛰었다. 박동수만 몰랐다. 세상이 그토록 시끄럽게 위험을 알리는데, 그 한 사람에게만 세상은 완벽하게 고요했다. 연기가 방에 찰 때까지,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앉아 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그 고요를 떠올리면, 어떤 비명보다 무서웠다. 위험이 소리치는데 저 혼자만 못 듣는 고요. 세상에 그보다 깊은 외로움은 없을 것 같았다.

미애가 그의 병실에서 나온 수첩을 보여줬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글로 말했다. 간호사에게 부탁할 게 있으면 종이에 썼다. 마지막 장에는, 화재와 상관없는, 며칠 전 날짜의 평범한 부탁이 적혀 있었다. 창문 좀 자주 열어주세요. 바깥소리는 못 들어도, 바람은 느끼고 싶어서요. 소리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이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드나들던 창문으로, 그날 밤 연기가 들어왔다.

박동수, 마흔넷. 위험이 소리쳤으나 홀로 듣지 못한 사람. 바람으로 세상과 이어지던 사람.

밤이 깊어질수록 그 방은 이상해졌다.

이름을 하나씩 채울 때마다, 방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 왔을 때의 서늘함이 옅어지고, 대신 다른 것이 들어찼다. 뭐라 해야 할까. 누가 오래 앉아 있던 방에 들어섰을 때의 온기 같은 것. 아무도 없는데, 방금까지 누가 있다 나간 듯한. 미애도 느끼는 듯했다. 어느 밤, 손칠복 노인의 이름 옆에 국밥 이야기를 붙이고 나자, 복도의 그 외는 소리에 이름이 하나 늘었다. 여섯이 아닌, 하나 더 많은 목소리로 들렸다.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애가 조용히 말했다. 저 소리, 요즘 조금 커졌죠. 나도 그렇게 들렸다.

이름을 부르면 죽은 자가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무서운 일로만 여겨왔다. 그런데 그 방에서 겪은 밤들은 달랐다. 이름을 부르면, 그들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돌아왔다. 낯선 것이 다가오는 일을 우리는 찾아온다 하고, 본디 있던 것이 제집에 드는 일을 돌아온다 한다. 그 방에서 밤마다 우리가 한 일은, 오래 쫓겨나 있던 사람을 제집으로 데려오는 조용한 마중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름을 채우는 사이 겨울이 다 갔다. 여섯 번째는 오래 걸렸다. 조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그 빈 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밤마다 그 빈 줄을 봤다. 볼 때마다, 그 줄이 조금씩 나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이름이 없는 사람. 산 채로 지워진 사람. 밤에 오던 아저씨. 그 줄을 채우려면, 내 이름을 거기 적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그날 밤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적어야 했다. 그것은 아직, 손이 닿지 못하는 데였다. 사람은 제 이름을 적는 일이 가장 쉬운 줄 알지만, 어떤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적기 어려운 이름이 되기도 한다.

간주 · 박인완이라는 이름

박인완이라는 이름으로 산 5년을, 나는 하나의 긴 겨울로 기억한다.

그 겨울에는 계절이 없었다. 여름에도 손이 시렸고, 봄에도 잎이 돋지 않았다. 쉼터에서 받은 이름표에는 박인완이라 적혀 있었다. 누가 지어준 이름인지는 모른다. 쉼터 사람이 대충 붙였거나, 내가 열에 들떠 웅얼거린 소리를 누가 그렇게 받아 적었거나. 아무래도 좋았다. 이름이 있으면 밥을 받았고, 밥을 받으면 하루를 넘겼고, 하루를 넘기면 또 하루가 왔다. 그게 전부였다. 이름은 사는 데 쓰는 도구였을 뿐, 나 자신은 아니었다.

일은 늘 밤일이었다. 낮일은 사람 얼굴을 봐야 했고, 얼굴을 보면 이름을 물었고, 이름을 물으면 대답할 게 없었다. 밤일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물류창고의 컨베이어벨트는 이름을 묻지 않았고, 주유소의 새벽 손님들은 얼굴을 보지 않았고, 공사장의 벽돌에는 과거가 없었다. 밤과 나는 잘 맞았다. 둘 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다는 점에서.

한 번, 딱 한 번 안개가 걷힐 뻔한 적이 있었다.

어느 도시의 버스 정류장이었다. 겨울이었고, 앞에 선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뭐라 칭얼거렸다. 바다 보러 가자고. 엄마가 웃으며 그랬다. 나중에, 나중에. 그 ‘나중에’라는 말에 발밑이 꺼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바다 보러 가자던 목소리 하나가, 안개 저편에서 손을 뻗어 내 발목을 붙들었다. 온몸이 떨렸다. 까닭도 모른 채 정류장 기둥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면 끔찍한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다. 그래서 따라가지 않았다. 그날 밤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안개 속으로 더 깊이. 기억이 나를 부르면, 나는 도망쳤다. 기억나는 일이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기억난 뒤에 감당해야 할 것이 무서웠다.

그렇게 5년을 도망쳤다. 이름 없는 사람은 도망치기에 좋았다. 잃을 이름이 없으니, 어디로 사라져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5년 동안 나는 나 자신의 무연고 사망자였다. 살아 있었지만 아무 데도 연이 없었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조차 나를 찾지 않았다. 세상이 은희를 무연고로 처리한 그 손과, 내가 나를 박인완으로 버려둔 그 손은, 같은 종류의 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지우는 손. 다만 하나는 남을 지웠고, 하나는 저를 지웠을 뿐이다.

박준호를 되찾는 일이 왜 이토록 무서웠는지, 이제는 안다. 박인완은 아무 짐이 없는 이름이었다. 박준호는, 지고 가야 할 이름이었다.

다음 화

제5화 · 그만두는 일
8월 19일 (수) 공개 예정
유상수 — Editlab 대표 · 작가
장편소설 『선택』 『물먹은 벽지』 『달의 수로를 걷는 밤』. 프로필·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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