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일간지 사회면 하단. 윤성재 기자. 제목은 작았다. 크게 뽑으면 사건만 보이고, 작게 뽑으면 이름이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5년 전 그 겨울, 이름을 잃은 사람들 — 시립병원 화재 기록 재구성』
5년 전 겨울, 시립병원 3층 서쪽 병동에서 불이 났다. 새벽이었다.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점검 기록은 있었으나, 실제 점검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직 인력은 병동 하나에 두 명이었다. 법정 기준은 충족했다.
공식 사망자는 세 명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 병동에 있던 사람은 그보다 많았다. 본지는 약국 처방전, 구급차 운행일지, 장례식장 접수대장, 화장장 예약 기록 등 병원 외부에 흩어진 자료를 대조해, 기록에서 누락된 이들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은 김은희, 열여섯이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조부는 그날 밤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은희는 무연고 사망자 한 명으로 처리됐다. 병실 파일에 조부의 연락처가 기재돼 있었다는 정황이 있으나, 사후에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무연고 사망자를 지방자치단체가 공고 후 처리하는 절차 자체는 적법하다. 문제는 그 앞에 있다. 나타날 유족이 있었는데 찾지 않은 것. 있는 끈을 없다고 적은 것. 적법한 절차의 입구에, 위법한 손이 하나 있었다.
김은희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쪽을 늘 원했다고 한다. 손칠복, 일흔셋은 국밥집에 백 원씩을 남기던 사람이었다. 이수진, 스물아홉은 죽는 순간까지 아이의 이름을 고르고 있었다. 이 기사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이름을 위해 쓰였다.
도시가 그 신문으로 아침을 열었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 그 면을 읽었다. 카페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시장 좌판에서. 여섯 개의 이름이 아침의 도시를 지나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신문 가판대 앞을 지나는데, 한 노인이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그 기사를 읽고 있었다. 다 읽더니, 신문을 접지 않고 한참 그대로 들고 있었다. 접으면 이름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애는 그날 아침 병원 근처에 갔다고 했다. 멀리서, 응급실 입구가 보이는 곳에. 5년 동안 매주 화요일 새벽에 섰던 그 그늘에. 오늘은 화요일이 아니었지만, 거기 서서 신문을 읽었다고. 그러고는 처음으로 병원 쪽으로 인사를 했다고. 은희한테 하는 인사였는지, 5년 전의 제 자신한테 하는 인사였는지는 모르겠다고.
“이제 좀 자도 될까요.” 그날 미애가 한 말이었다. 질문이 아니라, 오래 참았던 사람이 겨우 스스로에게 구하는 허락 같았다.
오전부터 전화가 울렸다.
응원이라는 낮은 목소리들. 오래 침묵하다 겨우 연결된 숨소리들. 그리고, 병원 법률대리인 명의의 내용증명. 윤성재가 팩스로 받아 읽어주었다. 정정보도청구서. 언론중재위원회 접수. 기사의 사실적 주장이 진실하지 않다며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를 요구한다고. 그리고 형사고소 예고. 명예훼손, 형법 307조. 예상한 대로였다. 결국 우리가 쓴 게 진실이냐 아니냐로 돌아왔다. 진실이면 공익 목적이 인정돼 위법성이 없어지고, 아니면 감옥에 간다. 간단했다.
도시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다. “왜 이제야”라는 말이 댓글 첫 줄에 걸렸고, “증거가 있냐”는 문장이 그 아래 딱딱하게 포개졌다. 병원은 반론 보도자료를 냈다. 점검은 규정대로였고, 인력은 법정 기준을 지켰으며, 무연고 사망자는 장사법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절차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절차가 아니었다. 있는 끈을 없다고 적은 손. 그 손을 증명하는 게 어려웠다. 5년이 지났고, 지운 사람은 부원장이 되었고, 지워진 사람은 말이 없었다.
오후 세 시쯤, 도서관 유리문이 열렸다.
은희의 조부였다. 항구에서 첫차를 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신문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카운터 앞에 서서, 은희의 이름 한 줄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더니, 흘러나온 첫마디가 고맙다는 인사도, 원망도 아니었다.
“이름이… 있네.”
그 한마디가 도서관 공기 한가운데 떨어졌다. 이름이 있네. 5년 만에, 은희는 처음으로 어딘가에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신문 한 귀퉁이라는 작은 곳이었지만, 없는 것과 있는 것 사이의 거리는 그 크기와 상관없었다.
이튿날, 도서관 게시판 한쪽에 코르크판을 하나 더 붙였다. 그 위에 종이 한 장을 놓았다. 이름을 남겨주세요.
처음엔 아무도 쓰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누군가 이름 하나를 적어 핀으로 꽂았다. 다음 날 그 옆에 하나가 더 붙었다. 잃어버린 이름들. 부고에 실리지 못한 이름들. 오래 마음속에만 있던 이름들. 사람들은 지나가며 그 이름들 앞에서 잠깐 멈췄고,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 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얼굴은, 다들 조금씩 닮아 있었다.
붙는 이름이 화재로 잃은 여섯만은 아니었다. 며칠 전 새벽, 젖은 어깨로 찾아와 서랍에 아들 이름을 두고 갔던 그 노파가, 이번엔 환한 낮에 왔다. 삼십 년 전 바다에 빠져 시신도 못 찾은 아들. 서랍 속에 혼자 두었던 그 이름을, 이번엔 게시판으로 옮겨 적었다. 저 혼자만의 서랍이 아니라, 모두가 보는 벽에. 자기까지 죽으면 아들이 정말로 없던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다고. 여기 적어두면, 자기가 죽어도 이 이름은 남을 테니까. 낮에 보는 노파의 어깨는 젖어 있지 않았고, 신발에도 모래가 없었다. 그날 밤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산 사람이든 아니든, 이름을 지키러 온 사람에게 그런 건 물어선 안 되는 거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이름 하나를 적고 갔다. 중년 남자는 이름을 적다가 손이 떨려 다 못 적고, 다음 날 다시 와서 마저 적었다. 어떤 이름은 적는 데 이틀이 걸렸다.
매일 오는 사람도 있었다.
쉰쯤 된 남자였는데, 개관 시간에 맞춰 와서 게시판 앞에 한참 서 있다 갔다.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냥 봤다. 일주일을 그러다, 여드레째 되던 날 처음으로 펜을 들었다. 아이 이름이었다. 열 살에 사고로 잃은 딸. 손이 떨려 이름을 다 적고 나서, 남자는 그 앞에서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나중에 지나가듯 말했다. 딸이 죽고 십 년 동안 한 번도 못 울었다고. 울면 딸을 정말 보내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름을 적고 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이름을 벽에 걸어두니까, 이제 좀 놓아도 되겠다 싶더라고. 붙잡고 있던 걸 벽이 대신 붙잡아주는 것 같다고.
이름을 붙든 손과 이름을 놓는 손이 반대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이름은 벽에 걸어야 비로소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붙들 데가 생겨야, 손을 펼 수 있었다.
이름은 도시를 넘어갔다. 라디오가 나간 뒤로 다른 지역에서도 편지가 왔다. 어떤 도서관에서는 작은 게시판을 따로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름을 잃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고, 이름을 둘 데가 없는 사람도 어디에나 있었다. 우리가 시작한 게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있던 슬픔이, 마침내 놓일 곳을 찾은 것뿐이었다.
물론 반대도 있었다. 어느 밤, 게시판의 종이 몇 장이 찢겨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몰랐다.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추냐는 사람도 있었고, 병원을 겨냥한 정치라는 사람도 있었다. 찢긴 종이를 주워, 구겨진 이름들을 손바닥으로 폈다. 다시 붙였다. 이름을 지우려는 손은 5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었다. 달라진 건, 이제 그 옆에 이름을 다시 붙이는 손이 있다는 거였다. 지우는 손 하나에, 붙이는 손 열이 붙었다. 그게 5년 전과 지금의 유일한, 그러나 전부인 차이였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몰려왔다. 아직 글씨가 서툰 아이가, 벽에 붙은 이름을 손끝으로 짚으며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었다. 김. 은. 희. 뜻도 모른 채, 읽는 연습처럼. 그런데 그 서툰 발음이, 어른들의 어떤 애도보다 그 이름을 멀리까지 데려갔다. 아이가 읽으면, 그 이름은 다음 세대로 건너갔다. 잊히지 않는다는 건, 결국 다음 입으로 넘어간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카운터에서 지켜보며, 오래전 은희가 세던 발소리를 떠올렸다. 하나, 둘, 셋. 이제는 아이들이 이름을 셌다. 세는 건 기도와 닮아 있었다. 하나, 둘, 셋. 그러다 보면, 잊히지 않았다.
기사가 나가고 열흘쯤 됐을 때, 한 남자가 도서관을 찾아왔다.
쉰 언저리. 작업복 차림에, 손등이 거칠었다. 문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 들어와, 신문 기사를 내밀었다. 우리 기사였다.
“저기… 이 기사 쓰신 분들이 여기 있다고 들어서요.” 목소리가 낮았다. “저는 그날, 그 병동에 있었습니다. 살아나온 사람이에요.”
카운터 안쪽에서 몸이 굳었다. 그날 밤 그 병동에서 살아나온 사람. 그를 앞에 두고, 아무 말도 못 했다.
“5년을 찾았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저를 끌어낸 사람을요. 그날 저는 3층 끝 병실에 있었어요. 다리를 다쳐 입원 중이었는데, 불이 났을 때 혼자였어요.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쳐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이제 죽는구나 했죠. 그런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저를 업었어요. 야간에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얼굴은 못 봤어요. 연기 때문에. 근데 그 사람이 저를 계단까지 업어다 놓고는, 다시 들어갔어요. 안에 아직 사람 있다고.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들어갔다 나오고, 또 들어갔다 나오고. 미친 사람처럼요.”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복도 맨 끝 방이었어요. 거기 여자애가 있다고 하면서. 그러고는… 나오지 않았어요. 둘 다. 저는 밖에서, 사람들이 그 사람을 못 봤다고 하는 걸 들었어요. 근무자 명단에 그런 사람 없다고. 저는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분명히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저를 업었는데. 제 등에 그 사람 팔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세상은 그런 사람 없었다고 하니까.”
남자가 눈을 붉혔다.
“저는 그 사람 이름을 알고 싶었어요. 절이라도 하려고. 근데 없는 사람이라잖아요. 그래서 5년 동안 아무한테도 이 얘기를 못 했어요. 얘기하면 다들 제가 충격받아서 헛것을 봤다고 하니까. 근데 이 기사를 보니까, 명단에 없던 사람이 있었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산 채로 지워진 사람이. 그게… 그 사람 아닙니까. 저를 업어준 그 사람.”
말을 삼켰다. 목이 조여서, 나오려는 소리를 삼켰다.
그날 밤 내가 한 일을, 나는 절반만 기억하고 있었다. 은희 방문 앞에서 손이 닿지 못한 것. 그것만 5년 동안 얼어붙어 있었다. 못 구한 것만 기억하고, 구한 것은 다 잊었다. 죄책감은 그런 것이었다. 실패한 순간만 확대해 되감고, 성공한 순간은 지워버린다. 이 남자를 업었던 것도, 계단까지 옮겼던 것도, 다시 들어갔던 것도, 하나도 기억에 없었다. 이 남자의 등이 나를 5년째 기억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지웠다.
“…그 사람은,”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여자애를, 못 구해서. 아마 스스로를 용서 못 했을 거예요.”
남자가 나를 가만히 봤다. 뭔가 알아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얼굴로.
“저 같으면,” 그가 말했다. “그 사람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못 구한 한 사람 때문에, 당신이 구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나는 당신이 구한 사람이라고. 지금 여기 살아서, 당신을 찾아왔다고. 그거면 그 사람도,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돌아간 뒤, 오래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은 이름 하나가 아니라, 5년 동안 지웠던 나 자신의 절반이었다. 못 구한 사람과 구한 사람. 나는 둘 다였다. 손끝이 닿지 못한 그 거리만큼, 등에 업힌 그 무게도 진짜였다. 사람은 자기가 실패한 데로만 자기를 기억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자기가 구한 데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두 기억이 만나야, 비로소 한 사람이 온전해졌다.
밤이 되면, 카운터에 앉아 그 벽을 봤다. 낮에 사람들이 적고 간 이름들이 형광등 아래서 조용히 빛났다. 어떤 이름은 반듯했고, 어떤 이름은 삐뚤었고, 어떤 이름은 눈물자국에 번져 있었다. 이 작은 도서관이 감당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게 아닌가, 가끔 두려웠다. 그러다 생각을 고쳤다. 이름을 담는 데 필요한 건 큰 그릇이 아니었다. 지워지지 않는 곳 하나면 됐다.
그 저녁, 나는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게 더 무서운 거였다. 특별한 날에 무너지는 사람은 그 날만 넘기면 되는데,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무너지는 사람은 넘길 날이 없다. 5년째 화요일마다 병원을 돌았고, 5년째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료는 상자에 쌓여만 갔고, 그 상자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신문사 몇 곳에 연락했지만, 다들 오래된 일이라고 했다. 증거가 약하다고. 사감이 섞였다고. 맞는 말이었다. 사감이 섞였다. 5년을 이것만 봤는데, 어떻게 섞이지 않나.
그날 저녁, 상자를 다 태워버릴까 생각했다. 태우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상자를 태우는 대신, 바다로 갔다. 상자를 못 태우니 나를 태우려던 거였는지도 모른다. 겨울 바다는 차가웠다. 발목을 지나고 무릎을 지나고, 물이 코트 자락을 물고 늘어질 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이제 아무것도 세지 않아도 된다. 이제 아무 이름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
허리까지 잠겼을 때,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김은희. 그리고 그 옆에 다섯 이름이 더. 내가 죽으면, 저 이름들도 나랑 같이 죽는다. 세상에서 저 여섯을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니까. 내가 물에 잠기면, 저들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5년 전에, 한 번은 오늘. 그 생각이 발목을 붙잡았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무섭다고들 하는데, 그날 나를 붙잡은 손은 무섭지 않았다. 따뜻했다. 물보다 따뜻했다.
돌아 나왔다. 젖은 채로, 모래를 밟으며. 그때 이상하게,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 어딘가에서. 그런데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죽으려다 만 사람의 등을, 누가 봤을지도 모른다는 게.
한참 뒤에 알았다. 그 저녁, 바닷가에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걸.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를 보면서,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람.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 걸음도 못 뗐다는 사람. 우리는 그 저녁, 서로 등을 맞댄 채 각자 얼어붙어 있었다. 한 사람은 물속에서, 한 사람은 모래 위에서. 둘 다, 움직여야 하는데 못 움직이는 병을 앓으면서.
그 사람이 며칠 뒤 병원에 왔다는 걸, 여섯 개의 빈칸을 찾았다는 걸 들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했다. 그 저녁 나를 못 구한 그 발이, 며칠 뒤 지워진 이름들을 찾아 나섰다는 것. 사람은 한 번 못 움직인 데서, 다음 걸음을 준비하는지도 모른다. 그날 못 뗀 한 걸음이, 다른 곳에서 여섯 걸음이 되어 돌아오는지도.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알았다. 어디서 봤다고. 정확히는, 어떤 얼굴인지 안다고. 물가에서 못 움직이는 사람의 얼굴. 그건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보던 얼굴이었으니까.
장편소설 『선택』 『물먹은 벽지』 『달의 수로를 걷는 밤』. 프로필·작품 ›
EDITLAB 뉴스레터
오늘의 한 가지
평일 아침, 오늘 꼭 알아야 할 정보 하나. 신청 마감이 코앞인 지원금, 검색해도 안 나오는 실제 절차와 후기.
생년월일을 넣으면 매주 월요일 내 주간 운세도 같이 받을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 문의 editlab204@gmail.com · 발행 Editla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