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사직서 양식을 찾았다.
서랍 맨 아래 칸에서 쉽게 나왔다. 이 병원에서 사직서는 자주 쓰이는 서류였을 것이다. 사유란은 넓었다. 그 넓은 여백이 오래 나를 붙잡았다. 진짜 사유를 적자면 다섯 장으로도 모자랐지만, 진짜 사유란 본디 사유란에 적는 게 아니었다. 개인 사정. 네 글자를 적고 펜을 내려놓았다.
그만두려는 까닭은 간단했다. 매일 아침 남의 이름을 옮겨 적으면서, 그 이름들을 지운 손과 같은 건물에서 숨 쉬는 일. 은희의 이름이 없는 명단을, 없다는 걸 알면서 정리하는 일. 못 할 짓이었다. 오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하필 이제 와서 무엇인가를 느끼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감각이 돌아오면, 돌아온 감각에 맞는 곳으로 가야 한다. 병원은 이제 몸에 맞는 옷이 아니었다.
과장이 사유를 물었을 때, 창밖 주차장을 봤다. 바람 부는 쪽으로 낙엽이 굴러갔다.
“맞지 않아서요.”
과장은 더 묻지 않았다. 이런 데서는 사람이 오래 못 버틴다는 것을 그도 알았다.
보안실 앞을 지나는데 김 주임이 나를 불렀다.
“어이, 신참.” 컵라면을 내려놓으며. “이거 좀 봐봐. 소름 끼쳐서.”
모니터에 3층 서쪽 복도가 떠 있었다. 새벽 시각의 녹화 화면. 텅 빈 복도, 길게 이어진 타일, 끝이 어둠으로 번지는 원근.
“5년 동안 이 카메라 죽어 있었거든. 고장인 줄 알았어. 근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화면이 잡혀. 근데 봐봐. 사람은 없어. 근데…” 김 주임이 화면을 확대했다. “저 벽. 저기 글씨 있지.”
복도 끝 벽에, 얼룩 같은 게 있었다. 확대하자 얼룩이 글자의 모양을 갖췄다. 낮에 그 복도를 지날 때는 없던 글씨였다. 흐릿했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있었음.
간호 기록지 뒷면에서 봤던 그 두 글자. 이상 없음 위에 누가 떨리는 손으로 덧쓴 그 반박. 5년 전 지워졌던 두 글자가, 아무도 없는 복도 벽에 다시 떠올라 있었다.
“이상하지.” 김 주임이 화면을 껐다. 손이 조금 떨렸다. “낮에 올라가 봤거든. 벽엔 아무것도 없어. 근데 밤만 되면 화면에 저게 잡혀. 나만 보이나 싶어서 다른 직원 불러다 보여줬는데, 걔들도 보인대. …근데 아무도 위에 보고를 하지 않아. 보고하면, 그 병동 얘기를 다시 꺼내야 하잖아. 다들 그 병동 얘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아. 5년 됐는데도.”
떨리는 손으로 컵라면을 다시 집는 김 주임을 보며, 그를 조금 이해했다. 못 본 척하는 일도 5년쯤 하면 그것 때문에 늙는다던 미애의 말. 김 주임의 늙음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보이는데 못 본 척하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사람의 얼굴보다 훨씬 빨리 상한다.
병원을 나오며 3층 창문을 올려다봤다. 불 꺼진 창들 사이, 그 병동만 어둠이 한 겹 더 짙었다. 아무도 없다던 그 복도에서, 누군가 여전히 이름을 외고 있었다. 있었음. 있었음. 없다고 적힌 곳에서, 있었다고 5년째 외는 목소리.
병원을 나온 그 주에, 도서관 야간 관리인 공고를 봤다.
작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밤과 책. 둘 다 조용함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잘 맞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도서관은 병원과 정반대의 곳이었다. 병원은 사람을 지우는 잘못을 저지른 곳이고, 도서관은 사람을 남기려고 지어진 곳이었다. 서가에 꽂힌 책 한 권 한 권이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도 거기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야 비로소 서가에 오르는 이름도 있었다.
첫 근무 날 받은 열쇠는 손안에서 맑은 소리를 냈다. 출입문이 닫히자 바깥의 시간과 안쪽의 시간이 서로를 잠깐 잊었다. 카운터에 앉아 첫 일지를 적었다. 이상 없음. 그 글자를 적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손이 멎었다. 이상 없음. 5년 전 그 복도에서도 누군가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위에 있었음, 이라 덧썼다. 이상 없음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덮으려는 말인지도 몰랐다. 펜을 들어 그 밑에 한 줄을 더 그었다. 오늘 밤, 이 도서관에 있던 모든 이름을 기억함. 누가 읽으라고 쓴 것은 아니었다. 이상 없음으로 하루를 닫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도서관의 밤은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열 시가 지나면 마지막 손님이 나갔고, 서가를 한 바퀴 돌며 엉뚱한 곳에 꽂힌 책을 바로잡았다. 사람들은 책을 아무 데나 두고 갔다. 요리책이 시집 사이에, 아동 그림책이 법전 옆에. 그것들을 하나씩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잃어버린 것을 있어야 할 곳에 돌려놓는 일. 오랫동안 나 자신을 엉뚱한 서가에 꽂아두고 살았는데, 남의 책이라도 제 곳에 꽂아 넣으면 마음이 놓였다.
어느 밤, 반납함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누군가 책갈피 대신 끼워두고 간 것. 버스표 뒷면에, 연필로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처음 보는 이름. 그 옆에 짧은 글씨. 보고 싶다. 잊지 않으려고 눌러 적은 글씨였다. 사람은 잊고 싶은 것을 굳이 종이에 옮겨 적지 않으니까. 그 버스표를 버리지 못하고 카운터 서랍에 넣어두었다. 첫 번째 이름이었다. 아직 게시판도 없던 때였다.
밤손님이 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 도서관 문은 잠겨 있어야 했다. 그런데 유리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자동문도 아닌데. 고개를 들자, 노파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어깨가 젖어 있었고, 신발 밑창에 젖은 모래가 묻어 있었다. 바다에서 온 사람의 모래. 그 모래를 보는데, 오래전 바닷가에서 회색 코트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저녁이 스쳤다.
“문 닫을 시간인데요.” 겨우 말했다.
노파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들었어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책등을 손끝으로 훑으면서. 누군가를 찾는 손길이었다. 무슨 책을 찾는 손길은 아니었다. 책들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사람을 더듬는 손길이었다.
“우리 아들 책, 반납됐나 보러 왔어.” 노파가 말했다. 나를 보지 않고, 서가를 보며. “그 애가 빌려간 책이 있는데, 아직 돌려주지 않았거든. 삼십 년 됐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물었다. 대출 기록을 뒤지는 척, 실은 손이 떨려 자판을 헛짚으면서.
노파가 아들의 이름을 말했다. 화면에는 그 이름이 없었다. 당연했다. 삼십 년 전이라면 이 도서관이 생기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노파는 여기 있다고 했다. 분명히 여기라고. 삼십 년을 찾아다녔는데, 오늘 밤 발이 저절로 여기로 왔다고.
“아드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노파가 그제야 나를 봤다. 오래 울어 짓무른 눈이었다.
“바다에.” 말했다. “삼십 년 전에 물에 빠졌어. 시신도 못 찾았어. 시신을 못 찾으면, 사망신고도 애매하다더라고. 그래서 우리 아들은… 죽지도 못했어. 서류상으로는 아직 어딘가 살아 있는 걸로 돼 있는데, 실제로는 삼십 년째 바닷속에 있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나는 그 애 이름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를 모르겠어. 무덤도 없고, 위패도 못 놓고. 이름을 둘 데가 없어.”
이름을 둘 데가 없어. 그 말이 도서관의 밤공기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이 노파는 대출 기록을 뒤지러 온 게 아니었다. 삼십 년 동안 놓아둘 데 없던 아들의 이름을, 둘 곳을 찾아 헤매다, 이름을 지키는 냄새가 나는 이곳까지 흘러든 것이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이름 잃은 것들은 이름을 지키는 곳을 냄새로 찾아냈다.
“여기 두세요.” 나도 모르게 말했다. 카운터 서랍에서 버스표를, 그 첫 번째 이름을 꺼냈다. “여기, 이 서랍에요. 아드님 이름을 적어 넣어두시면, 제가 지켜요. 제가 밤마다 여기 있어요. 이름은 제가 지우지 않아요.”
노파의 눈에서 무엇인가 풀렸다. 삼십 년 묵은 매듭 하나가.
노파가 카운터의 메모지에 아들의 이름을 적었다. 손이 떨려 획이 흔들렸다. 다 적고는, 그 종이를 오래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유리문이 다시 소리 없이 열렸고, 노파는 젖은 어깨로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갔다.
문가로 갔다. 바닥에, 젖은 모래 발자국이 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문밖으로는 발자국이 없었다. 문턱에서 뚝 끊겨 있었다. 거기서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아니면, 거기서부터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삼십 년 동안 이름 둘 곳을 못 찾은 슬픔이, 유령보다 훨씬 무거웠으니까. 세상에는 귀신보다 더 오래 떠도는 게 있었다. 놓일 곳을 못 찾은 이름. 그것이 산 사람의 것이든 죽은 사람의 것이든.
다음 날 아침, 서랍을 열었다. 노파가 적고 간 이름은 그대로 있었다. 버스표 옆에. 두 번째 이름이었다. 그 두 장을 나란히 놓고 가만히 봤다. 게시판을 만들어야겠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름 둘 곳이 없어 밤바다에서 걸어 올라오는 사람이, 이 노파 하나만은 아닐 테니까.
미애는 그 방의 자료를 조금씩 도서관으로 옮겼다.
병원 안에 두는 게 더는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오상근이 김 주임을 통해 3층을 다시 잠그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카운터 뒤 창고 한쪽에 자료를 쌓아두고, 밤마다 그것들을 정리했다. 흩어진 조각을 시간순으로, 사람순으로. 병원에서 서류를 만지던 손이, 이제는 지워진 사람들을 다시 세우는 데 쓰였다. 같은 손인데 하는 일이 정반대였다.
“왜 이걸 하세요.” 어느 밤 미애에게 물었다. “다 끝난 일이잖아요. 5년이나 지났고.”
미애가 서류를 무릎에 놓은 채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끝났다고 생각하면요,” 마침내 말했다. “밤에 자다가 그 아이 목소리가 들려요. 저는 은희를 몰랐어요. 그날 밤엔 다른 병동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름을 알고 나니까, 이제 그 아이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이름을 안다는 건 그런 거예요. 모를 땐 남이었는데, 알고 나면 두고 갈 수가 없어요.”
정은도 가끔 도서관에 들렀다. 야간 근무가 없는 날이면. 늘 창가 쪽에 앉아 아무 책이나 펼쳐놓고도 읽지는 않았다.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은 조용한 곳을 찾아 헤맨다고, 언젠가 말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것을 잃은 사람끼리는, 말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었다.
첫눈이 오던 밤이었다.
도서관 유리문이 밀렸다. 손님이 올 시각이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때. 카운터에서 고개를 들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눈을 털지도 않고, 문 앞에 가만히 서서 나를 봤다. 삼십 대 초반쯤. 얼굴이 창백했고, 두 손으로 낡은 사진첩 하나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저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이름이…”
말을 멈췄다. 삼켰다가, 다시 꺼냈다. 오래 준비한 말을 마침내 하는 사람처럼.
“박준호 씨… 아니세요?”
카운터 위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매일 밤 주머니에서 만지던 그 세 글자를, 처음으로 남의 입에서 들었다. 종이에 적힌 이름이 소리가 되어 방 안에 떨어졌고, 그 소리가 어디에 떨어지는지 나는 지켜봤다. 명치였다.
“…누구세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울지는 않았다. 우는 대신, 안고 있던 사진첩을 조금 더 세게 안았다.
“미진이에요.” 말했다. “송미진. …준호 오빠 동생이요.”
장편소설 『선택』 『물먹은 벽지』 『달의 수로를 걷는 밤』. 프로필·작품 ›
